치현교회의 유래

방화3동(洞)의 유래 chihyun_town_pic1.jpg

1990년도 3월 21일 건설부고시 제138호에 의거 방화1동 구간 중에 개화산 아래 자락의 정곡리·능리·치현리의 대부분을 택지 개발함으로써, 오늘날 거대한 아파트 군락과 6개의 초중고교와 많은 상가들이 들어섰으며, 옛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게 변하고 말았다. (1994년 11월 1일 字로 방화3동이 개청됨)
개화산은 개화동에 위치한 해발 128.4m의 산으로, 사시사철 꽃이 만발해있어 개화(開花)산이라 했다. 이 곳에 있던 봉수대는 여수 돌산도에서 시발하여 전라도·충청도 방면의 해로를 통한 봉수였으며, 서울 회현동쪽 남산 산마루의 남산 제5봉으로 연결되었다. 동쪽 봉수대인 ‘치현’에서 봉화를 들었던 곳을 ‘봉화뚝’이라 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통신대가 주둔하고 있다. 봉수대의 직봉(直烽) 또는 간봉(間烽)이 있었던 지역은 오늘날에도 통신대의 주둔지이거나 기상관측소가 있는 곳이 많다.


조선시대 개화산에 설치되었던 두 개의 봉수대 가운데 동쪽 봉수대에 해당하는 표고 70.5m의 봉우리에 딸린 고개를 ‘치현(雉峴)’, 곧 ‘꿩고개’라 하였다. 이 고개에는 꿩이 많아 꿩사냥하기에 좋았다 한다. ‘방화리’(傍花里)라는 동명이 생긴 후에는 ‘방화고개’라고도 하였다. 치현 동쪽 끝에 자리한 마을을 ‘정곡리(井谷里)’라 하였는데, 마을 골짜기에 언제나 맑은 물이 흘렀다. 가뭄때 다른 마을의 샘물은 말라도 이 마을만은 언제나 물이 마을을 돌아 흘렀기 때문에 ‘샘물이 돌아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돌정말’ 또는 ‘돌샘말이’라 하고 한자로 ‘정곡리(井谷里)’라 하였다.
긴등은 광복 후에 새로 생긴 마을인데, 집들이 치현을 중심으로 산등성이에 길게 산재해 있다 하여 ‘긴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247, 607∼609번지 일대이다. 긴등의 서쪽 끝에는 수용소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수용소부락이라고도 하는데, 6·25전쟁 뒤에, 황해도 송화군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의 수용소가 해체되자 그곳에 수용되어 있던 사람들이 이 일대에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강서단위농협이 있는 서북쪽 지역이다. 치현의 동남 끝부분을 ‘도리모퉁이’라 하는데, 길이 돌아 꼬부라졌다 하여 붙여졌다.
사시사철 꽃향기가 퍼지는 개화(花)산 옆(傍)에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방화동’이라는 동명이 생겼다. 옛날의 ‘능리’가 방화1동, 정곡리, 치현리가 방화3동, 공항동 옆 논밭이 방화2동이 되었다.

 

*능리(陵里) chihyun_town_pic2.jpg
고려 말에 이곳을 왕릉지로 삼았으나 왕기가 모두 남경(지금의 서울)쪽으로 빠져나간다는 풍수지리가의 만류에 의해, 왕릉지라는 표시만 해두고 아무도 묘를 쓸 수 없게 하였다.그 뒤 조선조 때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 임금께서 생부이신 원종(追尊 : 宣祖의 5子)의 능을 이곳으로 옮기려 하였으나, 한성에서부터 골짜기 100개를 넘어야 후손이 발복하고 나라의 평안이 유지되는데, 능리까지는 99개밖에 되지 않으므로 조금 더 서쪽인 김포 풍무리(북성산, 냉정산)로 옮겨 왕릉지로 하였으니 오늘날 『장릉』이 되었다. 그 후 이곳은 이름만 능리로 전해지게 되었으며 심정(沈貞)공이 들어와 자리잡고 살면서부터 심씨마을이 되었다.

 

*정곡리(井谷里)
치현의 동쪽 끝에 자리한 마을을 정곡리라 하는데 마을 골짜기에 언제나 맑은 샘물이 흘렀기에 정곡리라 하였다. 아무리 가물어도 샘물은 치현마을을 감돌아 흐르기 때문에 돌정말(돌샘말)이라고도 하였다.

 

*치현리(雉峴里)
치현리는 개화산으로부터 북동쪽으로 이어진 높은 70.5m의 치현(꿩고개)이 있는 주위에 발달한 마을이다. 치현이라는 지명은 이 고개가 꿩사냥하기에 좋았기 때문에 붙여졌는데 방화리라는 동명이 생긴 이후에는 방화고개라고도 불렀다. 신설동은 원래 예닐곱채 정도의 집이 있었으나 6·25동란 이후 새로 집들을 많이 짓고 사람들이 모여들자 새로 동네가 형성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640, 641, 667, 620, 626, 634번지 일대로 개화로 서쪽이 이에 해당한다.

 

*도리 모퉁이
도리모퉁이는 치현의 동남 끝 부분에 해당되는데 길이 돌아 꼬부라져 있는 모퉁이를 말한다.

 

*큰고개
개화산과 치현이 이어지는 잘록한 허리부분을 큰고개라 불렀다. 행주나루로 가기 위해서는 지름길이었던 이 고개를 넘었는데 은근히 높고 나무가 울창해서 대낮에도 혼자 넘기에는 으스스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고개를 넘으려면 대여섯명이 모여서 횃불을 들고 지나갔다고 한다. 토성고개는 큰고개에서 이어진 작은 고개에 해당하는 곳이다.

 

*배다리벌
배다리벌은 올림픽대로의 강쪽에 한강체육공원으로 조성된 곳인데 옛날에는 이곳에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한강을 오가는 배가 이곳보다 하류지점의 서쪽에 있는 행주나루에 정박하지만 작은 거룻배가 이곳까지 들어오므로 배가 다리를 놓아준다는 의미의 배다릿벌이라 하였다.

 

*범머리 웅덩이
범머리웅덩이는 버머리못이라고도 하는데 1925년에 일어난 을축년 대홍수로 불어났던 한강물로 일대의 전답이 모두 물에 잠겼는데 다른 곳의 물이 빠진 후에도 여기만큼은 물이 빠지지 않고 계속 고여있어 자연적으로 못이 생기게 되었다. 범머리처럼 생겼다는 산줄기의 끝에 있는데 어느덧 범머리 웅덩이는 동네 낚시터가 되어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